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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지도 못하게 바쁘고 힘들었던 한 주가 지났습니다. 택배업을 하다 보면 휴일이 간절하게 기다려지지만 막상 휴일로 인한 후폭풍을 경험하다 보면 '차라리 휴일 따위 없이 주 6일 꾸준히 일하는 게 낫겠다.'라는 생각이 들게 마련입니다. 그만큼 휴일, 특히 연휴에 대한 후폭풍의 압박은 크고 부담스러운 일입니다.

 

지난주 대전 한국타이어 공장에서 대형 화재가 일어났습니다. 아파트 수십 층에 달하는 화염과 유독가스로 공장 자체도 피해가 컸지만 주변 역시 함께 피해를 입었습니다. 담장을 마주하던 바로 옆 CJ대한통운 대전 서브도 그중 하나입니다. 대전서브터미널은 CJ대한통운 물류의 중심에 있는 매우 중요한 터미널입니다. 특히나 대전은 일부 지역이 아닌 전국을 커버하는 유일한 중심 허브이기 때문에 대전 터미널이 멈추면 그 피해가 전국에 있는 모든 서브터미널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13일 월요일 밤, 이 대전 터미널에 유독가스가 바람을 타고 흘러들어 작업자들이 호흡곤란을 겪고 일부 병원으로 급히 이송하는 수준의 피해를 입어 터미널 운영이 전면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그로 인해 일주일 중 물량이 가장 많은 화요일 비상사태가 터져버렸지요. 무려 140만 개가 넘는 택배 화물이 대전에 불이 묶인 겁니다. 상하차가 안되었으니 그 물량을 담당할 간선차량들도 모두 발이 묶인 건 당연한 결과입니다.

 

터미널은 다음날 바로 비상운영에 들어가 물량을 분산시키고 이삼일에 걸쳐 피해를 복구해 나갔지만 그 여파는 고스란히 서브터미널과 일선 택배 기사들에게 이어집니다. 

화요일 이른 새벽. 출근을 앞두고 간선 상황을 앱으로 확인하다가 뭔가 심상치 않은 징조를 발견했습니다.  평소 7, 8대가 들어와야 할 간선차량의 예정정보가 시간과 내용이 대부분 비어있는 것입니다. 이상함을 직감하고 커뮤니티를 검색해 보니 역시나.. 대전 터미널에 비상이 터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SNS로 대전 터미널 상황이 어떤지 정보를 요청하고, 서브 터미널 집배점장님께 연락을 해보니 좀 더 구체적인 상황을 대략 알 수 있었습니다.   비상이다!

 

결국 화요일 도착한 간선차량은 넉대에 그쳤습니다. 대전허브 차량은 작업중단 이전에 상차가 완료된 한 대만 들어오고, 나머지 넉 대가 모두 잘렸습니다. 절반 가까운 물량이 취소된 것이지요. 물량이 적게 오는 거야 한편으론 일찍 퇴근하니 솔직히 반가운 마음도 없지 않았습니다만 문제는 정체된 물량으로 인한 후폭풍이었습니다.  가장 물량이 많은 화요일 터미널 운영이 중단되었으니  정체물량이 해소될 때까지 이삼일 이상의 후폭풍과 신선상품 파손과 반품사태도 불 보듯 뻔한 일이라 짜증이 밀려왔습니다. 

 

예상은 빗나가질 않고, 수요일 300개의 물량이 떨어졌습니다.  도심에서야 300개 갖고 뭔 날리냐 하겠지만 양평 산간 지방을 배송하는 기사에게 300개는 명절 수준. 하루 150 -200km를 주행하며 산골짜기에 배송을 하려면 시간당 아무리 빨라도 30개를 넘기기 어렵습니다. 보통 시간당 25개에서 30개가 최대치인데 300개가 왔으니 제아무리 중복에 다수 짐을 고려한다고 해도 아홉시간 이상 걸릴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간선차량도 터미널 정체 물량을 해소하느라 막차 도착시간이 12시를 넘기고.. 출발은 한 시를 넘겨 첫배송을 하게 되는 상황. 무조건 밤 열 시를 넘겨야 일이 끝나는 건 당연한 결과입니다.  게다가 밤이 되면 배송 속도는 20여 개 수준으로 더욱 떨어지기에 수요일은 11시가 넘어서야 퇴근할 수 있었습니다. 멘붕.

 

이후로 목요일, 금요일까지 여파는 지속되고, 매일 밤 10시를 전후해서 퇴근하니 일주일을 지내고 난 휴일. 온 몸이 뻐근합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뻐근함입니다. 그래도 한편으로 위안이 되는 건 물량이 적지 않아 화요일 펑크 난 수입은 메우고도 남게 되었네요. 이걸 웃어야 할지.. 

 

힘든 일주일을 보내고 기다리던 일요일 휴무입니다. 다시 택배업으로 복귀하니 휴일의 소중함과 절실함이 진하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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