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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 통학버스를 운전하는 기사님과 친했는데, 그때 운전이라는 직업도 나름 괜찮은 것 같아서 물어봤더니 그 사장님 손사래를 치시며 그러셨던 게 기억이 납니다. "에이 못써.. 이거 하려고 대형먼허 따면 죽을 때까지 이거 하게 돼... 젊은 사람이 더 좋은 일 해야지 못써..".  '좋은 일'이란 과연 뭘까.. 하는 고민은 차치하고. 지금에 와 물류일을 직업으로 하다 보니 그 사장님의 말씀이 이해가 갑니다. 운전직이 그러하듯 물류업 역시 한번 발을 들이면 계속 이 바닥에 일을 하게 되는 게 자연스러운 일인 것 같습니다. 그래도 밑바닥에 이만한 일이 없다.. 뭐 그런 거랄까요? ㅡㅡ; 

잠시동안의 직영 회사원 생활 후 지입기사로 돌아와 받은 구역은 외곽지역입니다. 양평군의 동부 외곽지역은 청운, 단월, 양동면 세곳이 있는데, 그중 단월과 양동 사이에 걸친 중산간지역입니다. 수도권 도심지 택배기사들은 상상도 못 할 하루 100km 이상의 주행거리와 비포장 산간 오지마을 배송에 삼 개월에 한 번씩 타이어를 바꿔야 하는 극한의 구역이지요. ^^; 

지난주 낮기온이 영상 8도까지 올라가는데도 이 산골짜기 마을엔 눈이 녹지를 않으니 양평이 경기도라고는 하나 산간지역은 '강원도 양평군'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다 있습니다. 

 

지금은 그나마 구역 인수인계중이라서 하루 100여 개 남짓 받아서 적응 중이지만 일주일에 리 단위 마을 한 개씩 추가로 받아서 250개까지 배송을 늘려가야 합니다. 시간당 30개 배송하기도 벅찬 지역이니 하루 8시간 이상을 돌아다니면서 배송을 해야 하는 환경이지요. 한 달 기름값과 타이어등 차량유지비만 기본 100 이상 깨지는 곳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연차 오래된 형님들이 이런 산간 오지마을을 주로 배송하는데 그 이유는 다름아닌 '계단이 없다'는 것과 '시간에 쫓기진 않는다'는 것.  집들은 몽땅 다 전원주택이나 농가주택이니 집 앞까지 차 끌고 들어가 물건을 내려놓으니 카트도 쓸 일이 없을 만큼 물건 들고뛰는 일은 없는 동네이고, 계단을 오르는 일은 하루 서너 번 있을까 말까 하지요 게다가 퇴근시간이 있는 관공서라고는 기껏해야 하수관리시설이나 산림청 거시기 정도, 내지는 농협 출장소 정도라.. 늦으면 늦는 대로 그냥 문안에 두고 가면 되는 지역이라 퇴근시간에 쫓기는 일도 없습니다.  

 

그러니 천상 느긋하게 마음먹고 세월아 내월아~ 하면서 배송하면 되는 곳. 파이팅 넘치는 젊은 친구들에게는 환장하게 답답할 곳이지만 짬밥이 되는 형님들에게는 딱 맞는 구역이지요. ^^; 전 아직 그 정도는 아닙니다만 시장구역 뛰다가 몸 상해서 그만뒀던 터라 지금 이 환경이 의외로 재미있어서 불만 없이 즐겁게 다니고 있습니다. 구역이야 후일 어찌 될지 알 수가 없지만 일단 현재 받은 구역은 이곳이니 주어진 곳에서 최선을 다하는 게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라 생각하면서 묵묵히 일할 뿐입니다. 

 

다행히 유류비가 많이 들어가는 만큼 '급지'가 높아 수수료는 도심지에 비해 높은 편입니다.  차량 소모품 비용 빼면 그게 그거지만 그나마 도심지 배송보다는 적은 갯수를 배송하니 상차 부담이 적어서 쌤쌤입니다. ^^; 

 

이번주에 조금 더 깊이 들어가는 마을을 받아 본격적으로 배송을 시작하는데 나름 긴장과 기대가 공존하는 상황입니다. 오늘은 또 어떤 집이 나를 당황하게 할까? 또 어떤집이 나를 황당해서 웃게 만들까.. ^^;  세상살이 이런저런 마을 구경하고 집 구경하면서 사람 살아가는 모습 보는 재미가 나름 쏠쏠한 시골 택배기사입니다. 

 

하루가 다르게 봄이 오고 있습니다. 나이가 들어갈 수록 봄바람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네요. 곧 여기저기 꽃들이 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습니다. 양평의 산골마을 곳곳이 유명한 관광지이기도 하기에 가끔 차 세워놓고 꽃구경도 하고 그러면 참 좋습니다. 어서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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